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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선갤러리, 김숙 초대 展, “시들지 않는 사랑 그리고 정열의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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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기자
기사입력 2020-07-18

장은선갤러리 김숙 초대 展

“시들지 않는 사랑 그리고 정열의 나날”

▲ 장은선갤러리 김숙 초대 展“시들지 않는 사랑 그리고 정열의 나날”  © 문화예술의전당

 

2020. 8. 5 (수) ~ 8. 22 (토)

Open Reception 2020. 8. 5 (수) PM 4:00~ 6:00

장은선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운니동 19번지)

 www.galleryjang.com (02-730-3533)

 

중견 여류 화가 김숙 선생은 맨드라미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작가의 작업 소재인 맨드라미는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며, ‘또 하나의 나’와 같은 꽃이다. 두툼한 붓터치의 맨드라미 그림에 작가 자신의 삶을 투영시켜 작가와 대상의 동질성을 표현한 것이다. 작가는 작업을 통해 꽃에서 보여지는 화려함보다는 꽃의 내면에 있는 순수함과 고요함을 나타냈다.

 

이번 전시에서 김숙 작가는 평면에서 입체적인 이미지를 도입하여 맨드라미의 색감이나 형상을 두터운 질감표현을 통해 현실속의 맨드라미를 보는 듯 싶은 형태미를 표현하면서도 맨드라미 꽃잎 하나하나 섬세한 터치로 그 아름다움을 극대화시켰다. 그리고 대상을 부각시키기 위해 배경을 색면추상으로 처리하고, 한지의 느낌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어 한국적 정서를 표현한다. 이는 맨드라미에 적용되는 질감과 유사한 분위기를 나타내는가 하면, 마치 거미줄처럼 복잡한 구조의 미세한 질감도 있다. 배경과 더불어 맨드라미 자체로 실상과 다른 비현실적인 색체를 구사하는 보다 다채롭고 풍부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 문화예술의전당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는 8월, 뜨거운 태양 아래 붉게 솟아난 맨드라미 작품 30여점을 장은선 갤러리에서 선보인다. 맨드라미의 도도함과 멋스러움, 소박하면서도 강인함을 작품을 통해 감상하시길 바란다. 

 

김숙 작가는 27회 개인전, 그룹전 및 초대전에 170여회 참여했다. KAMA, 한국미술협회, 서울아카데미회 회원이며 대한민국 미술대전 수상 등 다수 공모전에서 수차례 수상했으며 대구의료원, 외교통상부, 숭실대학교 등 다수의 기관에 작품이 소장되어있다. 

 

  © 문화예술의전당

 

김 숙의 작품세계 

입체적인 형태해석과 조형적인 변주의 조화 

 

신항섭(미술평론가)

 

특정 소재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작가의 경우 소재주의 작가라고 한다. 소재주의는 궁극적인 목표인 개별적인 조형세계, 즉 자기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어느 한 가지 소재에의 천착 및 집중을 통해 자기만의 조형언어를 만들어내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특정의 소재만으로 일가를 이루는 작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다채로운 소재를 다루는 작가보다 소재주의에 몰입하는 작가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는데 더 유리할 수도 있음을 말해준다.

 

 

김 숙은 맨드라미라는 한 가지 소재에만 전념해왔다. 10여년이 넘는 긴 시간을 맨드라미라는 특정 소재를 다루어왔고, 그 결과 맨드라미 그림이라고 하면 김 숙이라는 작가의 존재를 떠올리게 될 정도로 작가적인 지명도를 높이게 됐다. 물론 한 가지 소재에만 전념한다고 해서 작가적인 존재감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개별적인 조형언어 및 어법을 갖추지 않고서는 기억되기 어렵다. 다시 말해 남과 다른 시각적인 이미지, 즉 독특하고 개별적인 조형언어를 통해서만이 작가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

 

 

어느 면에서 맨드라미라는 평범한 꽃을 소재로 작업을 한다는 것은 불리한 조건일 수 있다. 그럼에도 맨드라미 작가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은 상상을 뛰어넘는, 실제의 꽃모양에 육박하는 듯싶은 질감이라는 조형적인 장치가 있기 때문이리라. 이는 사실적인 이미지를 추구하는 것만으로는 차별성 또는 독립성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일찍이 자각한 결과이다.

 

 

그의 작업은 사실적인 묘사를 기반으로 한 재현적인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실묘사 기법과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평면적인 캔버스에 눈속임으로서의 이미지를 추구하는 기존의 사실묘사가 아니라 실체에 근사한 형태미를 추구했다. 다시 말해 기존의 재현적인 회화가 지향해온 일루전에서 탈피하여 입체적인 표현기법을 강구해낸 것이다. 즉 평면에서 입체를 지향하는 표현방법을 모색하게 됐다.

 

그의 맨드라미 작업이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캔버스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듯싶은 양감, 즉 두터운 질감표현에서 비롯된다. 물감 또는 다른 재료를 사용하여 맨드라미가 마치 현실에서 보는 듯싶은 형태미로 표현된다. 물론 캔버스라는 평면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조형적인 기교일 따름이지만, 설핏 보면 실제의 맨드라미를 보고 있는 듯 착각할 만하다. 시선을 맨드라미 자체에만 집중하게 되면 회화적인 공간이라는 사실조차 잊게 만들 정도이다. 입체적인 표현이 만들어내는 시각적인 이미지는 그만큼 강렬하다.

 

 

이처럼 2차원 공간에서 3차원 공간을 지향하는 맨드라미의 이미지는 통념적인 그림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매우 비현실적이다. 일루전으로서의 그림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3차원적인 부조의 조형공간을 침범하는 상황이기에 그렇다. 현대미학의 시각으로는 전혀 이상한 설정이 아닐 수 있으나, 재현적인 이미지를 지향해온 그의 입장에서는 확실히 획기적인 시도이자 도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평면에서 입체적인 이미지를 도입하는 일 자체가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이미 적지 않은 현대작가들에 의해 꾸준히 모색해온 표현기법이자 공간개념이기에 그렇다. 입체적인 표현을 통해 실체감을 강화하는 것은 맨드라미의 형태미를 더욱 명료하게 드러내 보이도록 하는데 있다. 어쩌면 실체에 근사한 입체적인 형태미야말로 일루전이 가지고 있는 허상으로서의 이미지라는 한계를 극복, 실상의 감동에 근접시키려는 욕망의 표현일 수 있다.

 

 

2차원 공간에서 3차원 공간으로의 진입이 억지스럽게 보이지 않는 것은 맨드라미가 가지고 있는 형태적인 특징과 잘 부합하기 때문이지 싶다. 무엇보다도 울퉁불퉁한 질감표현은 맨드라미의 교묘한 형태미에 부합하는 남다른 해석이다. 실제의 형태에 근사한 맨드라미를 전제로 하는 형태해석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설정이다.

  © 문화예술의전당

 

전통적인 재현적인 회화에서 보면 억지스러운 설정일 수 있음에도 시각적인 설득력은 기대이상이다. 비록 가공의 형태해석일 따름이지만 입체적인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시각적인 효과는 기존의 표현기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놀라움과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작품과 마주하는 순간 실체를 옮겨다 놓은 듯싶은 착각에 빠지는 것은 이처럼 교묘한 예술적인 트릭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가공된 현실상이 상상의 공간과 현실의 경계를 애매모호하게 만드는 까닭이다.

 

 

그가 강구해낸 과장된 표현으로서의 질감은 입체적인 공간, 즉 삼차원의 현실공간을 꿈꾼다. 여기에서 질감표현은 현실공간으로 편입하려는 욕망의 표출일 수 있다. 맨드라미라는 차별성이 없는 소재, 더구나 시각적으로는 사실적인 형태감각을 견지하는 가운데 삼차원 공간을 꿈꾼다는 것은 조형적인 상상일 따름이다. 하지만 그는 상상을 뛰어넘는 부조형식의 표현방법으로 일루전 그 이상의 시각적인 호소력을 지닌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울퉁불퉁한 질감은 현실속의 맨드라미를 보는 듯싶은 시각적인 체험을 유도한다. 분명히 인위적인 표현임에도 실상으로 믿도록 유도하는 것은 예술을 전제로 하는 조형의 마법이다. 따라서 평면공간임에도 현실공간을 지향하는 맨드라미는 영특하게 보일 정도이다. 마치 살아 있는 듯싶은 형태미로 삼차원의 공간에 간단히 진입하는 맨드라미의 존재성이야말로 그가 찾아낸 회화적인 또 다른 상상의 공간이자 환상이다.

과장된 양감으로서의 독특한 질감표현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맨드라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특징과 무관하지 않다. 맨드라미는 여러 개의 꽃잎으로 이루어지는 여타 꽃들과 다른 형태로 되어 있다. 닭 벼슬과 모양이 같다 하여 <계관화>라는 별칭이 있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닭의 볏처럼 생긴데다가 주름진 독특한 형태의 꽃은 붉은색과 흰색 황색 분홍색 등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지고 모양도 저마다 조금씩 다르다. 기괴하게 보일 만큼 주름진 형태의 꽃 모양으로 인해 꽃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에서조차 벗어난다. 어느 면에서 이처럼 개성이 뚜렷한 형태미야말로 입체적인 표현을 강구하도록 유인하는 요인이었는지 모른다.

 

 

실제로 입체적인 표현과 맨드라미는 상성이 좋다. 실제의 맨드라미처럼 착각하기 십상인 것도 질감 표현이 맨드라미의 독특한 형태미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두터운 질감은 재현적인 그림에서는 매우 이질적인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맨드라미의 본래적인 형태가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까닭에 질감표현은 오히려 사실성을 강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하는 까닭이다.

 

 

이렇듯이 입체적인 조형공간으로의 진출이라는 조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음에도 소재주의라는 시선을 여전히 외면할 수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조형적인 해석의 다각화를 모색하게 됐다. 그리하여 적어도 자기복제의 함정에서 벗어나 작품 하나하나에 독립적인 가치를 부여하고자 했다. 소재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정체되지 않는 창의적인 작가로서의 입장을 견지하기 위해서는 부단히 변화를 획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배경에 대한 다양한 조형적인 해석이라는 방법을 택했다. 이는 조형의 변주를 방법론으로 삼는 현대미학과 일치하는 것이다.

 

이처럼 배경을 다양한 추상적인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한층 풍부하고 다양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대다수의 작품에서 배경은 단색조의 추상적인 이미지로 처리되는데, 이 때 작품에 따라 색조가 바뀐다. 뿐만 아니라 맨드라미에 적용되는 질감과 유사한 분위기를 나타내는가 하면, 마치 거미줄처럼 복잡한 구조의 미세한 질감도 있다. 특히 단색조로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다양한 색채가 혼재하는 복합적인 채색기법의 질감표현도 있다.

 

 

특히 배경에 대한 다양한 표현방법을 통해 조형의 묘미를 일깨워준다. 그의 작업을 통해 새삼 배경의 조형적인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감하게 된다. 이는 단지 조형적인 변주의 문제가 아니라 화면의 밀도감과 더불어 화면공간의 심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다는 것은 심미적인 세계를 향한 문턱을 넘어섰음을 말해준다. 예술로서의 초월적인 가치에 대한 인식이야말로 심미표현의 직접적인 동기가 된다.

이처럼 맨드라미와 어울리는 다양한 해석의 배경을 통해 맨드라미라는 단일소재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한다. 물론 배경과 더불어 맨드라미 자체로 실상과 다른 비현실적인 색채를 구사하는 등 보다 다채롭고 풍부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실제로 전시 때마다 어김없이 새로운 조형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일련의 근래 작업에서는 단색조로 화면을 통일하는 등 보다 현대적인 조형미를 지향하고 있다.

청색 또는 흰색만으로 꽃과 배경 등 전체를 단색으로 덮는다. 이렇듯이 비실제적인 색채이미지를 통해 현실감각을 차단함으로써 현대미학과의 결속을 모색한다. 이로써 맨드라미라는 현실공간에 존재하는 이미지는 증발하고 개념상의 맨드라미만 남게 된다. 여기에서는 재현적인 가치 또는 사실적인 형태감각은 무시된다. 맨드라미는 조형적인 세계를 전개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할 뿐 주도적인 존재로서의 면모는 후퇴하고 만다.

현실적인 감각을 차단했을 때 거기에는 무엇이 남고 존재하는가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사실적인 형태 및 현실적인 색채가 사라졌을 때 맨드라미의 형해만 보일 따름이다. 이때 맨드라미는 의식의 그림자라는 형태로 다가오게 된다. 실체는 없고 관념적인 이미지로서 존재할 뿐이다. 이는 정제된 미의식이 지어낸 관념적인 세계이며 개념적인 이미지인 셈이다. 감각적인 표현이 사라졌을 때 그 자리에 들어서는 것은 심미세계이다.

 

 

그의 작업은 여기까지 이르렀다. 이후의 작업은 또 어떻게 변하게 될까.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또 다른 조형적인 변주를 모색할 것이다. 맨드라미는 그대로 존재하는 가운데 또 다른 방법을 강구해내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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