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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견높은 관객들이 지금 현실을 보고 하는 말- 마음이 참담하고 참담한 나날을 비루하게 살아내고 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분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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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종민 기자
기사입력 2020-08-01

정치평론가 유창선 박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진중권 전 교수가 소개하고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분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보낸다. © 문화예술의전당

 

 

1. 마치 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같다. 한동훈과 정진웅에 관한 글을 올리면 득달같이 와서 따지는 사람들.

공통점은 눈앞에 있는 사실(fact)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신념이 입력해놓은 질문들을 반복한다는 사실이다.

범죄혐의자(한동훈)의 말을 믿느냐? 압수수색을 방해하니 제지당한 것 아니냐? 그러다가당신이 왜 이렇게 변했냐? 그런 레파토리로 흘러간다.

 

사실을 설명해줘도 받아들이지를 못한다.

 

범죄 혐의의 증거가 나타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아무런 증거도 없으면서 다수의 중요 증거들을 확보했다고 거짓말을 반복해온 것은 이성윤이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의 정진웅 수사팀이다,

 

방송사들에 가짜 정보와 악마의 편집을 한 녹취록을 유출한 의혹을 받고 있는 것도 그들이다,

 

한동훈이 수사 방해를 하지 않았음은 서울중앙지검도 인정하여 공무집행방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변호인에게 전화를 걸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은 정진웅이었고 전화를 걸려면 잠금해제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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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동훈은 죄를 졌어야만 한다고 믿는 그들을 상대로 사실을 말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 사람들에게 이 문제는 사실의 영역이 아니라 신념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무너져,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자신들의 상상물을 현실로 믿어버리는 데서 비극은 탄생한다.

 

그들 뒤에는 사이비 교주들이 선동을 한다. “믿습니까?” “믿습니다!”

정의와 불의를 가리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이 무엇인가를 가리는 일이다. 진실은 신념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각색되지 않는다. 있던 모습 그대로 있을 뿐이다. 우리가 집중할 것은그 진실을 추적하는 일이고, 또한 거짓을 찾아내어 고발하는 일이다. 포스트 트루스의 저자 리 매킨타이어는 이렇게 말한다. “적어도 우리는 거짓말을 마주하면 거짓말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2. 하지만 나는 그들과의 소통을 포기하기로 했다. “누군가가 우리의 가장 확고한 신념을 부정하면, 우리는 보통 그 신념에 더욱더 강하게 집착하는 식으로 반응한다던 캐스 선스타인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의 말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광경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일 마음이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과는 소통 자체가 불가능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도 하버마스와 아렌트를 인용하며 소통과 토론의 필요성을 말하곤 했다. 하지만 괴물 같은 음모론이 판치는 우리 현실에서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사실이 아니라 신념으로 싸우는 현실에서 이성적인 토론과 합의는 불가능하다. 서로가 각자의 길을 가고 진실을 가리기 위한 싸움을 피하지 않는 방법 밖에 없다. 절망적이지만,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다. 가짜 희망은 포기하기로 하자. 낡은 모든 것들과 결연히 이별하도록 하자.

 

 

3. 그러니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누구를 설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 사람들이 생각을 바꿀 가능성은 1% 정도가 최대치일 것이다. 그들이 아니라, 거짓에 분노하고 절망하여 마음을 추스리지 못하고 있는 또한 많은 사람들, 그 분들이 외롭지 않게, 그분들과의 마음의 연대를 위해 보잘 것 없는 글들을 쓴다.

 

페북 커버에는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는 책 제목을 올려놓고, 세상 얘기만 늘어놓고 있는 모습이 스스로 곤혹스럽기도 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거지? 건강이 좋아지면 이러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하는 마음에. 시간들이고 공들여 이런 글 쓴다고 밥이 나오나 떡이 나오나. 어느 시절이든, 죽으나 사나 권력의 편에 서는 사람들에게는 밥도 나오고 떡도 나온다. 아주 많이. 하지만 그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것을 감수하며 이곳 페북에서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분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보낸다.

자신의 삶의 지향점에 대한 자기 모순에도 불구하고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그 분들에게 미력이나마 힘이 되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어디 한동훈 문제 하나만이 아니지 않나. 눈 앞에 펼쳐지는 많은 광경들은 마치 한나라당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할 때가 많다. 아니, 그 시절에도 이런 통법부’ (通法府)는 없었고, 정권 수사를 하던 검사들에게 이런 집요한 탄압은 없었다. 이 광풍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또 어디에 서있게 될까.. 마음이 참담하고 참담한 나날을 비루하게 살아내고 있다.

 

▲ 진중권, 유창선 박사  © 문화예술의전당

 

  © 문화예술의전당



진중권 페이스북 바로가기: https://www.facebook.com/jungkwon.c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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